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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소마>리뷰 - 난해한 영화. 공포인가 고어인가? 볼까요
    카테고리 없음 2020. 2. 18. 20:34

    (포 1러시아를 포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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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미드소마>를 봤어요. 이 영화를 만든 앨리 아이스터 감독이 <유전>으로 많은 유행을 얻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유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떤 작품인지 후속작인 <미드소마>까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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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홍보 방식부터 독특했다.기존의 어두운 밤을 가운데로 전개하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밝은 낮을 가운데로 전개하는 공포영화라고 선전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처럼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과 같은 방식을 파괴한 영화로 홍보하는 방법은 컨저링 다음이 오랜만이라 더 흥미진진한 영화였습니다. ​ ​ ​ ​ ​ ​ 게다가 국내의 포스터에는 '90년에 한번 9가지 사이의 축제 당신은 선택된.'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아주 드문 축제 사이에 진행되는 소가령극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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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인지 <써티데이즈> 오브 본인트>의 느낌도 본인이지만 밝은 곳에서 일어난 소가령극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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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공포영화로 유명한 <루이즈>를 떠올리기도 하는 영화였어요. 이런 의견을 하면서 <미드소마>를 봤어요. 어차피 사람이 의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재는 모두 넘치고 본인의 온정 속에서 영화가 동등한 감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근데 이 영화 난이도가 넌 너무 높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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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의미심장한 그림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림을 이해하기 전에 영화 이야기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주인공의 초반 불행과 스웨덴에서 겪는 하지재의 비극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부터가 알기 쉽습니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대사가 많지 않고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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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고어성이 강해 다시 보기를 꺼립니다. 고어성이 너무 강해서 제가 공포영화를 보러 왔는지 고어 영화를 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에요. 고어의 정도가 댁에 강해서 보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화면에서 눈을 물들이게 됩니다. 보면서 들은 소견으로는 감독님이 머리를 많이 쓰신 영화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영화 자체가 택무불친절하고 잔인한 장면 투성이인 사건 투성이로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큰 반전을 주었던 <메멘토>가 그리워지는 영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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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는 보면서 무슨 얘기인가 싶어 골치 아팠던 것은 미드소마와 거의 대동소이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이상의 충격을 주고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그에 비해 <미드소마>는 마지막에야 내가 이해한 듯하며, 이 <하지제>를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포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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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칭찬 일색이지만, 저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공포영화라는 큰 틀 안에 고어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를 다루는 방법은 서우 같은 고어영화의 방식을 다수 차용한 상념이 강하다. 어디선가 위험해요. 다가가서 죽는 사람은 잔인하게 죽어요. 이것이 이 영화의 공포방식입니다. 어디에서 두려움이 올지 모르게 연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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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제 중간 동료들이 사라지는데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막힌 것은 사람이 눈앞에서 죽고 그 다음 날 사람이 없어졌지만 관경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사람이 사라질 때 하루에 두명씩 모습을 지웁니다.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에서도 아주 깊은 산골마을이 나쁘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곳이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이 한 명만 없어지면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녀도 부족한데 동네 사람들의 줄거리만 믿고 찾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자살하는 풍습을 "나쁘지 않다"의 전통이라고 스토리하는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주인공 하나행 동료가 없어졌을 때에도 반응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두 사람이 사라진 다음에 두 사람이 추가로 사라진 그이츄이에서 주인공은 이를 수상히 이쵸크눙 체하고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영화 초반부터 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남성 friend까지 실종된 friend를 찾는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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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욱이 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무엇 1조 같은 사람들과는 닮지 않은 타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입장에서 더 답답했다. " 나쁘지 않고 스스로'수.. 하는 sound'를 선택한다는 데 변함 없이 영화는 불친절한 정도가 심하니 이 2개가 섞였고, 후반 스토리는 그냥 흐르는 대로 보는 듯한 상태로 하죠. 영화를 깊이 보는 것이 풍속화된 사람들에게 다른 것이 보 1고생이지만, 1단 영화는 어떤 재미인 집중하도록 하는 재미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영화 중반부에서? 하고 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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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설정상 모순에 대한 설명도 없는 것이 보고, 본인에 대한 차가운 인상을 주는데 일조합니다. 영화 중간에 하지제를 지내는 촌락공동체 유지방식에 대한 정보가 뿌려집니다. 이들은 장로에 의해 교미가 허용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은 각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으며 필요할 경우 외부인을 불러들이기도 한다고. 여기서 근친상간은 장난인 양, 진심처럼 따로 질문이 오가면서 이 특이한 촌락에서도 피할 것을 알려줍니다. 희한하게도 촌락의 성경책 신내림(?)을 그 뒤에 받는 소녀는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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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한번 머리가 아파집니다. 이 마을은 드문 마을이긴 하죠. '태양'을 숭배하고, 마을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지제는 결미에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입니다. 1단 이 마을이 ' 하고'을 숭배하는 것은 압니다. 추가로 이 마을은 사람들의 1생을 마치'윤회'과 마찬가지로 의견을 할 것입니다. 죽으면 새로 아이에서 태어난다고 의견을 잡고 사람의 인생은 마치 계절과 같아서 그 주기를 18년에 본인 누어 4계절의 마지막 겨울, 72세가 되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그들이 자살을 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라도 왜 근친 상간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가 중요한 것 1인가요? 그들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것이 이 영화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괜히 의미심장한 생각만 줍니다. 제가 해석하지 못한 것 1의 확률이 크고 그 후 선우는 맥거핀 1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인공 1행은 결말 의식의 희생일 죽을 운명인데 굳이'성경'을 이용하고 유인해서 계속 1필요가 당한 본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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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마약처럼 동네 특유의 환각제를 이용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자주 사용할 것이다. 마치 환각과 현실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거나 혹은 때때로 불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효과는 이 영화 특유의 도도함과 기괴함 때문에 제게는 거북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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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인공'이 있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예요.영화를 보면서 초반 대가족의 비극과 하지재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고, 이 두 요소를 한 영화에 넣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이문제는영화가끝나고내게갈때만의문제였는데마지막에주인공이웃는걸보고한번견해를해봤는데요.주인공은 동생으로 인해 대가족을 시간에 의한 필연적인 대나무 소리가 아닌 계획적인 대나무 소리로 날려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하지제'를 진행하는 부락의 필연적인 주례 크소리울 거부하고 계획적으로 72세에 주례 크소리울 맞는 모습과 거의 유사합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주인공은 자살하는 바위에 대한 환각을 볼 때 대가족들이 그 바위 근처에서 죽어 있는 환각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마다 주인공 일행을 이끌어 온 펠레와 주인공의 연관성도 중요할 것이다. 펠레와 주인공 대니 전체의 대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펠레는 어릴 때 대가족을 잃고, 대니는 최근 잃은 차이입니다. 이에 대해 펠레가 대니에게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이곳은 대가족을 잃은 자신을 매우 고맙고 자신도 이곳을 대가족처럼 여긴다고 한다. 대니도 이곳을 대가족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줄거리를 얘기할 것이다. 이때가 자살 하는 두 노인이 자신부터 이를 건너는 사람이 있느냐는 교은헤우에 부정적으로 봤으나 영화 후반부에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된 뒤, 옆에 있던 사람이 "지금은 대가족이에요? 자매님! 이라는 걸 보면 대니가 그들의 대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정스토리의 결국에는 잔인하고 기괴한 하지제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만큼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대가족을 잃은 대니가 어떻게 이 부락의 일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대니는 이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이 없어요. 마지막 장면과 5월의 여왕이 되는 장면을 제외하면입니다. 이것이 의미심장하고, 대니는 초반부터 동생의 이상행동에 시달리다 대가족의 대나무 소리에 비통하고, 자신을 경원하려는 동료들 때문에, 불쾌하고 기괴한 부락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자친구의 불륜으로 절규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웃는 이유가 뭔지 견해를 해봤는데요? 우선 5월이 여왕이 되는 춤을 출 때 웃은 이유는 그녀가 스웨덴어를 이해하면서 기꺼이 웃었지만 사실상 그녀의 교은헤울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에 웃은 시각 됩니다. 그녀는 대가족, 친구, 남자 친구 전체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서먹서먹한 대화만 주고받을 뿐이었습니다. "펠레"와는 대화는 했지만, 그녀는 남자 친구가 있어 불쾌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 신무를 출 때는 같은 여자들끼리의 대화였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에 웃은 이유는 그녀의 모든 고통이 끝난 순간이라 웃은게 아닌가 싶다. 대가족, 친구를 잃는 불행과 남자 친구의 불륜을 목격한 그녀에게는 눈에 띄는 불행은 불륜을 저지른 남자 친구입니다. 마지막이 되면서 사실상 그녀는 부락의 일원이 되었고, 불행인 남자 친구가 타 죽게 되어 그녀에게 행동에 제약이 되는 불행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자 친구에게는 비극이지만, 그녀에게는 앞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부락의 공동체로 남을 수 있게 됐기에 웃음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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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장 화제인 공포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리뷰를 써봤는데 이야기의 깊이는 얼마나 깊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의 고어성 때문에 더는 파헤칠 수 없어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지 아닌지 의문인데요. 서우 같은 고어 영화도 공포영화의 범주에 들면 공포인데,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공포라기보다는 그냥 색이 밝은 고어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영화는 당신의 무식하고 기괴하기 때문에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알고 싶어 한번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2번 3번 보기에는 부적합한 영화로, 교은헤합니다. 나중에 가끔 해석 내용이 실리면 내가 봤는지 알기 위해 봐도 이 영화는 다시 볼 게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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